금융ICT 인프라 이야기

1월도 다 지났는데 2019년 회고

2020-01-31

너무 거창하다. 회고라니. ㅎㅎ
그래도 2019년에 내가 뭘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 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적어본다.

유사 개발자 등극

근 10년을 “시스템 관리자”라는 직무로 나를 설명해 왔다. 장애에 유독 민감한 “금융”이라는 도메인에서 이제는Legacy 라는 단어로 설명 되는 HP-UX 시스템을 운영 해왔다. ICT 직무와 무관한 사람들에겐 의아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시스템 관리자로 살면서 프로그래밍을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일은 보통 “커맨드”로 이뤄진다. Command-line에서 우리는 가장 용감한 장수이며, 믿을수 있는 전문가이다.
그런데~ 환경이 변하고 있다. IaCInfrastructure as a Code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인프라를 구성하고 관리하는데 프로그래밍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자동화의 관점에서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으면 기존의 운영 프로세스를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다. 시스템 관리자에게도 프로그래밍 능력이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시스템 관리자는 프로그래밍을 못하면 안 되나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다. Python 참 매력적인 언어다. 프로그램이라 부르긴 조금 무색하지만 shell script로 작성하던 기존의 관리 스크립트를 “파이썬”으로 바꾸고 있다. filesystem 정리 스크립트 라든가, 간단한 자동화 프로그램 등을 작성 중이다. 로그도 이쁘게 찍고, 여러 케이스의 방어 로직도 넣고 있다. “프로그래밍” 참 매력적이다. 조금 빨리 이 매력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껄… 마냥 재미 있기만 하는 걸 보니 난 아직 “2단계” 인가 보다~~

내가 잘 아는 기술이 “Legacy”라니…

 몇년 전에는 시장의 흐름에 무관심하면서 나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고, 전통적인 글로벌 벤더가 지배 하는 Enterprise 시장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 동안은 맞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보다 빨리 변했다. HP, IBM, Oracle이 주도하던 이 시장에도 “오픈소스와 클라우드”가 스며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더 이상 ICT 신기술을 리드하는 것은 전통적인 글로벌 벤더가 아니라 ICT 기업이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다. 지금까지 기술 공부를 등한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nterprise 시장에서 필요한 글로벌 벤더의 H/W 와 인프라 S/W를 공부했다. 무한정 scale-out 할 수 없는 대용량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내겐 중요했다. 나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매 년 몇 십 테라의 디스크를 증설하고 Oracle RACReal Application Cluster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shared 환경을 구성했다. 다수의 Enterprise 시장이 Spring Framework을 앞세운 back-end 서비스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내겐 Tmax로 구성된 서비스에 큐잉이 발생하는지 모니터링 하고 원인을 파악하여 수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한 때는 내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더 고가라서 마치 내가 고급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내가 일 하는 이 “금융”이라는 도메인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일반적인 기술 생태계와 다르며 점점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 가끔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그래서 잘 아는 이 기술들이 “Legacy” 라니… 실망 하고만 있을 수 없고, 예전 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다만 다른 방향으로…

Cloud, DevOps를 배우다.

 시장이 변하고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느꼈다. 더 이상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불안해서 사용하지 못 한다고 할 수 없고, 모든 새로운 기술이 그렇듯 “Cloud”는 절대 선이 되고 있었다.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려면 공부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기사에 공감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나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쓴다.

  1. 내가 가고 싶을 만큼 좋은 회사의 해당 직무를 찾는다. (DevOps, SRE)
  2. 해당 직무의 JD(Job Description)을 읽는다.
  3. JD에 명시된 공통 기술 요소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정리한 것이 클라우드(특히 AWS), git, Container & Ochestration, CI / CD, IaC, 적어도 하나 이상의 능숙한 언어이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걱정은 없었다. “정말 다~ ~ ~ 몰랐다.”

희망적인 것은 10년이 넘는 IT 경험이 허송 세월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AWS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어려워하는 VPCVirtual Private Cloud와 NATNetwork Address Translation, ACLAccess Control List 등을 이미 “물리 세계에서 경험했다.” Docker는 처음이지만 VM을 잘 알고 있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 문서를 보며, namespace와 control group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스템 관리자인 나는 command-line 에서는 훌륭했다.
지금은 Docker와 Kubernetes 집중하고 있다. Docker는 그렇다 쳐도 Kubernetes는 조금 어렵다. 하지만 나중에 실재 운영 환경에서 사용할 때를 대비해 여러가지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다. container를 사용할 때 shared volume이 필요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부 네트워크는? log는 logstash 를 통해 Elastic stack에 두어야 하나? 아니면, fluentd를 사용해서 mongoDB에 넣어야 하나? 실 운영 환경에서는 고민할 것이 많을 것 같다.

기술 블로그를 읽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난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도 은행에도 흔한 거리에도 임산부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다 출산을 하면 그 많던 임산부는 없어지고, 유모차만 보인다.
“정말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기술 블로그를 찾아서 정리하고 매주 새로운 포스트를 읽기 전에는 우리 나라에 그렇게 좋은 기술 블로그가 많은지 몰랐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같은 ICT 대기업은 물론이고, 배달의 민족, 하이퍼 커넥트, 당근마켓 같은 스타트업 회사에서도 좋은 글들을 공유하고 있다. 주말에 관심 있는 블로그만 읽어도 반나절이 지난다. 블로그를 읽는 것이 정말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처럼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일일까? 하는 고민도 하지만 ICT 업계의 흐름과 내가 모르는 개발 영역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는 큰 도움을 준다.
요새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블로그는 Evan님의 블로그 https://evan-moon.github.io 이다. 예전에 “알지~ 알지~” 하며 넘긴 개념도, 나에게는 생소한 front-end 기술들도 잘 정리 해주신 글에 감사할 따름이다.

회사생활.

 이제는 실무자 일과 관리자 역할을 같이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몰라서 못 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리더로서 파트를 리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다. 여느 때처럼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있다. 여러 팀 관리와 책임감 있는 리더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의 답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년 째 지속되고 있는 클라우드 전환 프로젝트에 “번아웃”이 되기도 하지만 예전에 속 앓이 했던 것에 비하면 무던하게 넘기고 있다. 얼마 전 의지하던 후배가 팀을 떠날 때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후배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함이 미안하다.
얼마전 읽은 블로그에 좋은 곳으로 가는 후배는 놓아주고, 내가 일 하는 이 곳을 좋은 곳으로 만들자”란 말에 공감했다. 올 해는 작은 것부터 해보고 싶다.

마치며.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을 예정이다. 내가 관리하는 서비스 중 가장 큰 “전자금융” 업무가 Linux 시스템으로 교체 될 예정이고, 홈페이지 등 여러 비대면 서비스도 클라우드로 전환할 계획이다. 일로 바쁜 한 해가 되겠지만 일에 매몰되지 말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엔지니어로 한 해 더 남을 수 있도록 공부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